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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야기

60대 실직 일기

by recru 2025.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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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는 노후라는 게 막연하게만 느껴졌다. 은퇴 후에는 여행도 다니고, 여유롭게 책도 읽으며 지낼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돈이 없었다.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대가를 이제야 치르고 있다.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전기세, 수도세 고지서가 쌓인다. 냉장고는 텅 비어 있고, 하루 한 끼조차 제대로 챙겨 먹기가 버겁다. 편의점에서 가장 싼 삼각김밥을 집어 들면서도 가격을 한참 고민한다.

가끔은 계산대에서 카드를 긁기 전, 잔액이 부족하지 않을까 손이 떨린다.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반값 세일 상품을 찾아 헤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몸은 예전 같지 않다. 허리는 쑤시고, 무릎은 걷기만 해도 욱신거린다. 병원에 가야 할 일이 늘어나지만, 진료비가 두려워 참아버린다. 약국에서 약을 고르다, 가장 싼 진통제를 사서 버틴다. 밤에는 통증 때문에 잠을 설치고, 새벽에 깨어 눅눅한 방안을 바라본다. 텅 빈 방, 텅 빈 마음. 그 순간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거리는 여전히 활기차다. 카페에는 젊은 사람들이 가득하고, 시장에서는 가족 단위로 장을 보는 모습이 보인다. 그 속에 나는 없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그저 유령처럼 떠돈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나를 밀치고, 편의점에서는 계산대 직원이 거스름돈을 툭 던지듯 내민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투명해지는 일이었다.

 

일거리를 찾아봤다. 하지만 나이 든 사람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공사장 막일도, 식당 설거지도 이미 젊은 사람들 차지다. 몇 번이고 면접을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연세가 많으셔서요." 20대 때는 늙어도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제는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었다.

 

가끔은, 이대로 사라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통장이 바닥날 날이 머지않았고, 집주인의 눈치는 점점 더 노골적이 된다. 밖으로 나가 걸으며 차가운 바람을 맞는다. 지나는 사람들이 나를 힐끗 본다.

아무도 관심 없다. 내가 오늘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또 마음을 다잡는다. 어쩌면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 아무리 희미해도, 작은 희망 하나쯤은 품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믿으며, 다시 한 번 버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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